유학 설명회에서 오성식 원장님을 처음 뵙던 날 , 그때 저는 어린 나이에 홈스테이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있어야 한다는 점과 다시 왔을 때 학업적 정서적 적응에 대한 염려로 조기 유학을 망설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고민하며 상담을 청했을때 너무나 자신있고 명쾌하게 두가지 우려에 대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영어에 관한한 인지도가 있는 오원장님의 관리형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전달은 쉽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믿고 맡기는데 많이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존재자체가 행복이었던 저의 생활에서 아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고 아팠지만 열심히 잘하고 오겠노라는 아이의 자신감 은 캐나다 학교생활의 성공적 적응으로 이어졌고 배려심 많고 밝은 성격덕에 캐나다 친구들에게 도 꽤 인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흐뭇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하지만 저는 짧은 선택 시간만큼의 대가도 치루어야 했습니다. 홈스테이와의 관계에서 생각지못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매사에 긍적적인 반응속에서 성장해온 아이의 밝은 정서가 홈스테이맘의 무관심속에 상처를 입고 마음을 닫아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의 성급함 때문인 것같은 죄책감에 우는 아이와 함께 울며 저의 미안한 마음을 목놓고 전해야 했습니다. 그 상황에선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앞서 서운함과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OSS 선생님들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느낀 선생님들의 반응은 단호하고 확고했습니다. 홈스테이에서 아이를 일단 교장 선생님댁으로 옮겨 더 이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즉각 조처해주셨고 며칠전 직접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문제가 없어 보이고 따뜻한 가정으로 보이는 집으로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상처받기 쉬운 만큼 회복도 빠를 거라는 희망의 마음만큼, 화상전화에서 아이의 웃는 얼굴이 '엄마, 나 이제 괜찮아요.'하는 것처럼 보였고 "집은 낡았지만 가족들이 선해보이고 자전거도 탔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많이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이제 제가 할일은 저와 제 아이가 힘들어 할때 전화와 메일로 진심어린 위로와 용기를 주신 2기의 엄마들과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의 말로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신 OSS의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힘들때 큰 힘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고 이러한 OSS의 모든 강점들의 조화가 아이들의 성공적인 결실로 이어져 OSS가 마지막 까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성식 2008-09-01 04:21:30 글쓰기를 주저하고 계신 정훈이 엄마에게 몇 번씩 부탁을 드렸습니다. 가공된 글을 쓸 수는 없고, 또, 혹시라도 자신의 글이 지금 3기 부모님들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이 아닐 지 고민이 되어 좀처럼 글을 쓸 자신이 없다고 정훈맘은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진솔한 글을 써 주신 점에 대해 먼저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나는 글, 기쁜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불편한 심기를 경험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더군다나 모두가 보는 글인데................ 정훈이의 유학은 꼭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연히 한 강연장에서 정훈맘을 만나게 되었고, 이미 3기 모집이 끝난 상황에서 급히 결정을 하고 그날 새벽까지 마라톤 상담을 한 끝에 바로 그날 유학을 결정하고, 일사천리로 서류를 준비해서 막차로 3기에 합류하게 되었죠. 아무래도 늦게 유학을 결정하면 홈스테이를 정하는데 있어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불리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첫번째 홈스테이는 남미계 이민자 집이었습니다. 일단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시는 분이셔서 할머니와는 집식구들이 스페인어로 주로 대화를 했습니다. 일을 하시는 엄마,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아주 어린 동생과 영어를 못하시는 할머니......... 급기야 우리는 교육청에 이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홈스테이를 바꿔주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육청에서도 합리적인 이유로 이의를 제기할 때는 항상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 주십니다,. 그리고 두번째 홈스테이. 정훈이는 참 밝고, 어디에서나 적응을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종종 아이가 엄마를 걱정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생각하기에도 엄마가 여리다고 생각되는 경우입니다. 사실 정훈이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저 역시 정훈이의 탁월한 사회성과 적응력, 반면에 아이를 떠나보내고 난 후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은 공허함에 컴퓨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정훈맘.... 그래서 저 역시 정훈이 보다 엄마 돌보기에 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정훈이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늘, "엄마, 나 잘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였습니다. 정훈이의 학교생활은 늘 밝고 명랑했습니다. 정훈이가 엄마와의 화상통화에서 종종 불평을 늘어놓으면, 엄마 역시 그냥 참고 잘 지내라고만 얘기했습니다. 혹시 정훈이로 인해 OSS 선생님들이 괜한 번거로운 일을 경험하실까봐 하는 배려에서였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우리는 정훈이가 홈스테이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훈이는 두 번이나 홈스테이를 옮기면서 스스로 홈스테이를 옮겨도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무덤덤하게 적응하고 살고 있었던 겁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일기장에서,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어떤 통로를 통해서도 정훈이의 상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들은 바 없었던 OSS 선생님들은 정훈이 엄마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부지런히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교육청의 김재희 박사님을 모시고, 정훈이 홈스테이에 대한 대책 회의를 가졌습니다. 일단 교장 선생님은 새로운 홈스테이가 정해질 때까지 정훈이를 교장 선생님댁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이제는 세번째 홈스테이. 정훈이의 실수라기 보다는 홈스테이와의 인연이 닿지 않아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정훈이었기에 홈스테이 선정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청에서 보내준 네 후보 홈스테이집을 낱낱이 우리 선생님들이 방문해 보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훈이와 함께 그 중 한 집을 가 보았습니다. 정훈이는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밝은 정훈이의 옛 모습을 다시 찾았습니다. 홈스테이 문제로 불필요한 고생을 한 정훈이는 요즘 엄마가 보내준 환한 티셔츠를 입고 밝은 미소의 장난꾸러기로 돌아왔습니다. 한동안 정훈이의 마음을 달래주느라 직접 집으로 데리고 가 정훈이를 돌봐주신 교장선생님과 사모님께도 이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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